“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문구다. MLB의 명감독인 토미 라소다는 파란색 유니폼의 다저스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멋들어지게 표현해냈다. 난 아직 이보다 더 멋지게 컬러의 커뮤니케이션적 속성을 드러낸 문구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붉은 희망, 파란 도시, 회색 사랑, 검은 열정….어색하다. 희망은 파래야 하고, 도시는 잿빛이며, 연애는 핑크빛, 열정은 붉어야 한다.

컬러는 곧 의미다. 어휘다. 문장이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서 이러한 컬러들의 의미적 속성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다. 맥도날드와 고대는 빨갛고, 연대와 삼성은 파랗다

광고만큼 컬러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의미로 활용하는 분야도 없다. 최근 이러한 컬러를 이용해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두 개의 광고가 잇달아 선보였다. 같은 컬러에 같지만 다른 의미를 부여했지만 그 컬러를 취하는 방식이 상반된다.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광고를 선보인 두 회사 모두 ‘컬러’로 먹고 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카메라 제조사들이다. 혹자는 두 달 먼저 나온 한 회사의 광고를 보고 다른 회사에서 그 컬러의 의미를 차용한 것이라고도 한다. 일리 있지만 증거 없다. 두 회사는 카메라 업계의 강자 니콘과 올림푸스다.


올림푸스, ‘블랙’을 버리고 스타일을 찾다.

우선, 7월 달에 먼저 선보인 올림푸스의 광고부터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검정 물감속에서 여인의 형상이 드러난다. 나긋한 음악에 맞춰 여인이 몸을 일으키고, 검정 물감이 벗어 내리면서 아름다운 나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PEN 카메라에서도 검정물감이 흘러내리는 장면이 비친다. 그리고 마무리는 카메라와 함께 등장하는 카피, ‘블랙을 버리다. For the love of style’

뭐 굳이 번역을 하자면, “블랙을 버리다. 스타일을 사랑하기 위하여” 정도 되겠다. 광고 속 연인과카메라가 서로 교차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블랙’을 벗어내고 자신의 나신을 드러내는 여인은 곧 ‘PEN’과 동일시된다.

검정색의 크고 둔탁해 보이며 스타일을 무시한 마초적인 DSLR이 아니라, DSLR의 검정에 가려져있던 스타일을 찾아낸 새로운 카메라, PEN이 등장한 것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있다. 광고 속에서 ‘블랙’은 PEN의 아름다운 스타일을 뒤덮고 있던 불필요한 껍데기, 쓸데없는 관습, 즉 기존의 DSLR 제품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광고 내러티브에서 ‘저주에 걸려 추한 외모를 가졌던 공주님이 아름다운 본연의 모습을 찾는’ 동화 속의 스토리를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캐논과 니콘이라는 양강이 90%를 차지하고 있는 DSLR 시장에서 소모전을 하기보다는 올림푸스의 ‘스타일’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새로운 판을 짜서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겠다는 올림푸스의 전략이 절묘하게 담긴 크리에이티브라 하겠다.

간단하게 올림푸스의 광고를 해석하고 가자면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1. 여인 = PEN
2. 블랙 = 기존 DSLR
3. 블랙을 벗어나면서 스타일을 찾는 여인
= DSLR의 속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스타일을 더한 PEN


니콘, ‘블랙’을 길들이다.

앞서 말했듯이 올림푸스보다 2개월 후에 등장한 니콘의 광고는 동일한 ‘블랙’이라는 컬러에 같으면서도 다른 의미를 투영하여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크고, 묵직한, 거친 숨을 쉬는 검정색을 길들인다는 것. 니콘 리얼리티”

검은색이 지배하는 화면 속에서 별도의 BGM없이 카메라의 기계음 소리에 맞춰 검은색 말이 야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크고, 묵직하고, 거친 셔터소리를 내고, 검정색 컬러를 가지 것은 곧 니콘의 DSLR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카피, “진정한 카메라 니콘이기에”

이 광고에서도 ‘블랙’은 올림푸스의 광고에서와 마찬가지로 DSLR을 의미한다. 올림푸스 광고에서는 크고, 묵직하고, 거친 숨을 쉬는 블랙을 벗어 던졌지만 오히려 이 광고에서는 그것을 길들이라 한다. 진정한 카메라를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할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천리를 가는 명마를 가지기 위해 거칠고 난폭한 야생마를 길들인다는 역사 속, 소설 속 이야기는 이렇게 카메라 광고 속에서도 살아있다.

니콘의 광고도 간단하게 해석하고 가자면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1. 흑마 = DSLR 카메라
2. 길들이다 = DSLR을 익히다.
3. 흑마를 길들인다는 것
= 크기와 무게 때문에 사용하기 힘든 DSLR을 익숙하게 사용한다는 것.


“블랙”은 권위다. 신뢰다. 남성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구 개의 광고에서 블랙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두 광고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블랙’의 의미는 크고, 묵직하고, 사용하기 힘든 DSLR이다. 하지만, 올림푸스는 이를 ‘스타일을 가리는데 불과한 ‘불필요한 속성’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니콘 은 ‘진정한’ 카메라 사용을 위한 필수 속성’으로 의미를 담아낸다.

블랙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남성용 제품의 컬러이다. 검정색 세단, 검정색 수트, 검정색 가방, 그리고 검정색 만년필. 우리는 검정색에서 남성적, 신뢰, 전문성, 권력, 중후, 견고함 등의 의미를 실어 소통하고 있다. 검정색 벤츠나 검정색 IBM 노트북은 대표적인 사례다.

니콘이 기존에 쌓아둔 이러한 블랙의 의미를 강화하고 있다면, 올림푸스는 이러한 블랙을 스타일을 표현해내는 데 불필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블랙이 아닌 컬러를 선보이는 것이다.


“블랙”에 대한 남녀의 인식 차이

이러한 두 회사의 전략 차이는 광고에 대한 남녀의 반응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래는 두 광고에 대한 여성 네티즌들의 반응을 비교한 심화평가 결과보고서이다.

:::평가분석 그래프:::


여성 네티즌들은 두 광고에 대한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DSLR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망설이는 이유는 한 손으로 들기에도 벅차고 핸드백에 넣기에도 부담스러운 그 크기와 무게일 것이다. 하지만, 올림푸스의 광고는 이것을 완전히 해소해주고 있고, 니콘은 오히려 여성 유저의 접근을 막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제품 구매도와 모델 적합성에서 최저점을 받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남성 네티즌의 경우는 위에서 보듯이 오히려 전반적으로 니콘 광고에 더 높은 점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연령이 아닌 성별에 따른 차이가 극명하게 나뉘는 경우는 오랜만에 보는 현상이다. PEN의 경우는 남녀 모두에게서 전반적으로 비슷한 평가를 얻고 있지만 니콘의 경우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잠시나마 광고에서의 컬러와 그 의미를 담아내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런데,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니 머리를 스치는 다른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바로 두 광고가 ‘남성 vs 여성’의 상반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는데, 결국 두 광고에서 카메라를 표방하는 모델인 ‘길들여야 할 말’과 ‘스타일을 찾은 여성’은 둘 다 남성의 타겟이라는 점이다. 카메라 광고들은 일반적으로 남성사용자를 타겟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이 광고 역시 그러한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광고에서 보이는 잠재적 소비자와 광고 속 모델들의 역할에 대해서 한번 깊이있게 논의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다.

시샵 : Toru

해당 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더해 보세요.(40 내공 적립)

FAQ

Contact

개인정보취급방침I회원약관I회사소개
06039)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12길 25-1(구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11-19)
사업자등록번호 : 211-87-58665 통신판매업신고 제 강남-6953 호 (주)애드크림 대표이사 : 양 숙
Copyright © 2002 by TVCF.All right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