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사랑 공부가 창의성을 키운다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한국적 소재를 활용하여 독특한 패션의 세계를 열어온 쌈지의 천호균 대표. 쌈지는 초창기부터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는데, 이는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들을 배려하는 그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터. 사랑 공부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든다는 그의 생각은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경험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기에는 너무 깊은 울림을 남긴다.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광고의 크리에이티브를 평가하는 기준은 광고의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즉,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영역이 광고주인지 광고회사인지 소비자인지에 따라 광고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관점의 차이를 좁히면 광고 창의성을 평가할 일반화 모형을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이런 대목에 주목하여 이번에는 쌈지의 천호균(1949~) 대표를 만나 광고주 입장에서는 광고 창의성을 어떻게 보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두루 알다시피 쌈지 브랜드는 한국적 소재를 활용하여 독특한 패션의 세계를 열어왔다.

>>사람들의 관심이 대체로 외국 브랜드에 쏠리는 상황에서 쌈지가 우리 패션 문화에 미친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그동안 한국적 소재나 이미지를 과감하게 시도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저희가 쌈지를 시작할 때 뭔가 남들이 안 하고 사라질 것 같은 소외된 쪽의 아름다움을 발견해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주고 소박한 주제를 활용해서 디자인을 하기로 했어요. 당시에 외국말 브랜드가 많았고 우리말이 드물었는데 자연스럽게 우리 전통에 관련된 쌈지란 말이 생각나 브랜드 이름으로 썼어요. 차별화를 위해 그런 것이지 국수주의를 표방하려는 뜻은 전혀 없었죠. 한글이 독특하고 쌈지 브랜드의 내용도 소박한 디자인으로 표현하려고 하다 보니까 우리 것들을 많이 보여 주게 되었죠.

>>처음 브랜드 이름을 지을 때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서 결정하셨는지요?
그 당시 회사가 작았으니까 집사람이랑 둘이서 만들었죠. 집사람이 디자인을 맡았고 제가 경영을 했으니까 둘이 밥 먹다가 집사람이 쌈지가 어떠냐고 해서 좋다고 했죠. 그 후에는 그냥 제가 다 지었어요. 그냥 쌈지 이름 지었을 때의 기억으로 하다보니까 성공을 했어요. 딸기는 어떻게 지었냐 하면 그 당시 ‘딸기가 좋아’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계속 딸기가 생각나요. 딸기가 좀 못생겼잖아요. 그 무렵 제 눈에는 못생기고 독특한 것만 보이더라고요. 하도 예쁜 사람이 많으니까요. 디자인을 비슷하게 하면 두각을 나타낼 수 없으니까 폼 나는 것보다 독특함이 우선이었죠.

>>그동안 우리 것 또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광고에 많이 반영하셨는데, 평소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으시는지요?
텃밭을 가꾸면서 상추씨를 틔워 심었는데 열흘 만에 새싹이 나오는 것을 보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디자인 요소로 풀어내느냐에 관심을 가졌죠. 요즘 쌈지에는 ‘쌀’ ‘콩’ ‘팥’ 같은 우리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우리가 먹는 양식은 문자로도 아름답지만 색깔을 넣어보면 굉장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런 데서 소재를 구하고 소외되어 사라질 것 같거나 생명에 관계되는 많은 주제를 앞으로 쌈지 디자인에 반영하려고 해요.

>>하지만 사라진다는 것은 동시대의 트렌드와 맞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트렌드의 이면에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트렌드에 맞는 것도 실용적이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제일 아름다운 게 뭐냐면 시간이 만든 디자인이에요. 귀하니까, 굉장히 귀하니까요. 시간이란 급하게 만들 수 없잖아요. 골목길에 있는 풍요로움이나 소박함을 보세요. 재래시장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지금이라도 보존해야 할 것은 정말로 공을 들여 보존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리뉴얼하려고 하는 예술가들의 인식이 중요해요.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때 가장 좋은 디자인이 나오느냐고 물어보면 잘 팔리는 디자인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때가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생각하며 만들 때라고 그래요.

결국 배려하는 마음 또는 사랑 공부가 창의성을 낳는다고 봐요.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잘 하려면 문화적 인식을 바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문제가 중요해요. 자꾸 트렌드 타령만 하고 있을 까닭이 없지요. 그는 동시대의 트렌드 같은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늘 아름다움의 아득한 경지를 생각해왔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자는 취지에서 그동안 브랜드 이름을 새로 지으면서도 우리말의 감각을 살리려고 섬세한 고집을 부렸다. 그는 쌈지 이후, 아이삭, 놈, 진리, 딸기, 쌤, 마틴싯봉 같은 이름을 새로 지어 가방과 구두에서 팬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에 한국적 아름다움을 형상화시켰다.
그는 시간이 만든 디자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 믿음으로 트렌드라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반대편의 감각에 주목했다. 시간이 만든 디자인이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흑백사진처럼 하나의 풍경에 가두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패션에 반대편의 감각을 담으려는 시도는 트렌드에 이끌리는 마음을 정지시켜야 성공한다는 점에서, 미학적 상처가 남는 무모한 모험이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흘러간 시간들을 자신의 디자인 속에 가두어 시간이 만든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이 자기만의 몫이라고 여겼다.

>>아름다움과 관련하여 앞으로 아티스트가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은 어디일까요?
저희는 여러 예술 장르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예술가들은 왜 이렇게 배려하지 않고 사랑을 안 하고 살았을까 하는 후회하는 마음을 많이 가져요. 저는 사랑하는 마음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가들을 보며 트렌드를 너무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사랑하는 마음이 결국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만든다고 믿게 되었죠.

>>사랑이라…. 흔한 말이자 평범한 말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참 특별하게 들리네요.허준의 ‘동의보감’에 보면 사랑을 안 하고 살다보면 심장의 피가 줄어들어 자꾸만 기억력이 떨어지고, 깊이 있는 사랑을 나누면 심장이 막 떨리고 화색이 붉어진다고 되어 있어요. 그 당시에는 크리에이티브라는 용어가 없었겠지만 사랑이 크리에이티브를 만든다는 뜻이나 같아요. 실제로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때 가장 좋은 디자인이 나오느냐고 물어보면 잘 팔리는 디자인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때가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생각하며 만들 때라고 그래요.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한 시대니까 영어 공부하듯이 크리에이티브 공부도 해야겠지만, 결국 배려하는 마음 또는 사랑 공부가 창의성을 낳는다고 봐요.

>>쌈지와 관련된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들한테도 평소 사랑을 많이 해보라고 강조하고 사랑 공부 방법도 알려주시는지요?
사랑을 많이 하라고 강조하기보다 사랑 이야기를 많이 배워 디자인에 접목해보라고 하죠. 쌈지 아트 마케팅의 기반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통해 쌈지 크리에이티브를 낳게 하는 것인데 가만히 따져보면 그 친구들이 결국 하고 싶은 일이 사랑이거든요. 샤갈은 예술의 본질이 사랑이라고 했어요. 앤디워홀이나 피카소도 사랑을 강조했고요. 우주에 대한 사랑이 됐든, 자기 애인에 대한 사랑이 됐든, 자기 고향에 대한 사랑이 됐든, 사랑을 하다보니까 결국 명작에서는 끊임없이 사랑의 갈증을 이야기했어요. 크리에이티브를 공부해서 되는 것도 어느 정도라 살아가면서 사랑 공부하는 습관이 크리에이티브 공부보다 더 중요하죠. 그래서 저는 직원들의 채용 기준에서 심성이 착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최근 들어 여러 기업에서도 예술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쌈지는 출범 당시부터 아트 마케팅에 상당히 공을 들이셨잖아요. 쌈지 아트 마케팅의 흐름에 대해 듣고 싶어요.
저는 쌈지 브랜드를 만들 때부터 상표로 이야기하지 말고 아트로 말하자고 직원들에게 강조했어요. 그래서 아트 프로젝트가 나왔는데 작가들의 작품이 굉장히 창의적이니까 작품만 보여주고 쌈지라는 로고만 붙여 광고를 했어요. 작가들의 작품을 광고 메시지로 내보내고 쌈지는 후원하는 식으로 했어요. 쌈지 매장의 인테리어 일을 작가들한테 조건 없이 내주자 인테리어 작품에 작가의 개성이 묻어 나왔죠. 음악으로 신나게 사람들을 한번 모아보자 싶어 쌈지 사운드페스티벌을 기획해서 만 명 정도의 사람들을 모아, 뮤지션들에게 공연할 기회를 주는 식으로 아트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왔지요.

>>사실 영리를 생각하면 그렇게 하기 어려웠을 텐데요. 아니면 좋은 의미로 서로 윈-윈 하자는 차원에서 예술가들을 쌈지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하는 고도의 전략적 차원에서 그렇게 하셨거나.
어찌 생각하셔도 좋지만 저는 예술적 순수성으로 시작했어요. 어려운 시절 작가들에게 작업실이 필요할 것 같아 옛 사옥을 작가의 공간으로 내주고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어요. 쌈지의 경우 경영에서 디자인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직원교육이고 그 다음에 광고홍보가 중요하다면 이 세 가지 모두를 아트로 했어요. 쌈지의 물건이 좋아 잘 팔린다는 기사는 한 번도 안 난 것 같고 쌈지가 사운드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거나 쌈지 스페이스가 10년하고 문을 닫는다거나 하는 아트와 관련된 내용이 언론에 나오니까, 쌈지를 공연 기획사로 오해할 정도였지요.

>>어차피 경영이 중요할 텐데 그렇게 회사의 정체성에 오해가 생기면 불안해지지 않으세요?
저는 별 걱정 안 해요. 직원들에게 한 달에 한번 아티스트들을 만나게 하죠. 이런 교육을 통해 많이 배우라고 회사가 최대한 기회를 주는 거에요.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안 만들고는 각자에게 달려있어요. 쌈지 사운드페스티벌을 열면 만 명 중 2퍼센트 정도는 저희 직원들입니다. 아트 감각을 같이 나누는 것이 직원교육의 핵심이죠. 디자이너들이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는 순간이 디자인의 원동력이 되니까 그런 것들이 쌈지 브랜드의 존재 기반이자 투자이고 이런저런 광고홍보 활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쌈지는 초창기부터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들을 배려하는 그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터. 사랑 공부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든다는 그의 생각은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경험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기에는 너무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래서 더욱 특별한 이야기로 다가올 수밖에.

>>다양한 경험의 순간에 느낌과 몰입을 통해서 디자인 에너지가 나오겠지요. 사장님 자신의 디자인 원동력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저의 디자인 원동력도 사랑입니다. 시장에 많이 다니면서 사람들을 사랑했고 마음을 나눴지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똑같은 유행을 좇아 다니니까 좀 다른 것을 하자 싶어 다른 것을 했고,

결국 기막히게 적중했고 뭐 그렇게 되었어요. 저는 시장에 있는 사람들을 다른 각도에서 사랑했다고 보시면 되겠죠. 운이 좋았는지 고비마다 항상 사랑할 대상이 생겼어요. 조금 사랑을 하다보면 기회가 되어 굉장한 크리에이티브를 저에게 주니까 제가 직원들에게도 계속 전수하고 그렇게 이어져 오지 않았나 싶어요.

>>사랑할 대상을 어떤 식으로 조금씩 바꾸셨나요?
어릴 때는 엄마를 무척 사랑했죠. 저는 엄마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외에는 걱정이 없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우스꽝스러운 말이지만 영화배우들을 사랑했어요. 아름다운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많이 봤죠. 영화를 한참 보니까 예쁜 것에 대한 심미안이 생겼고 나중에 보니까 도토리 키재기 같아 싫증나서 독특함 쪽으로 갔죠. 대학생 때는 독특한 데 관심이 많았는데 죄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여자들 사이에 갑자기 한복 입은 여자가 나타나 열심히 따라다녔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의 배우자가 되었어요. 배우자란 평생을 서로에게 배우는 상대가 아니겠어요?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언제나 뭔가를 사랑하며 살아왔어요.

>>아름다움에도 장엄미와 숭고미 같은 여러 결이 있잖아요? 그런데 광고 창작자들은 자기가 만든 광고의 미학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평가를 받고 등급이나 순위가 매겨지는 것 때문에 고민이 많은 듯합니다.
제가 심사위원을 자주하는 편인데 심사할 때 마다 다른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드려요. “빨간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 중 뭐가 아름다울까요?” “밀레의 ‘만종’과 고흐의 ‘해바라기’ 중 뭐가 더 감동적일까요?” 다들 묵묵부답이죠. 답이 없는데도 자꾸 순위를 매기는 관행은 큰 문제입니다. 패션에서도 심사위원들 불러놓고 비슷비슷한 작품 중에서 1, 2, 3등을 뽑으라고 하거든요. 아름다움에는 순위가 없고 본 사람들이 단지 순위를 정할 뿐이죠. 저는 차라리 순위에 들지 못한 미완성 느낌을 주는 작품 속에서 디자인 원동력을 많이 느껴요. 쌈지 제품들도 촌스럽고 미완성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아요. 우리는 그렇게 떨어지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끄집어내기 시작하니까요. 미완성(未完成)의 ‘미’ 자는 아름다움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는 뜻에서 아닐 미(未) 자가 아닌 아름다울 미(美) 자로 써야 마땅해요. 쌈지 디자인에서 미완성이란 아름다울 미(美) 자를 쓰는 미완성(美完成)이죠.

“배우자(配偶者)에게 배우자.” “미완성(未完成)이 아니라 미완성(美完成)이다.” 매사에 독특한 눈썰미를 지닌 그는 단어 하나를 쓸 때도 예사로 쓰지 않고 자기 식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섬세함을 지녔다. ‘마누라 말을 잘 듣자’보다 ‘배우자에게 배우자’가 얼마나 더 광고적이며 리듬감이 살아있는 표현인가.
아름다움에는 순위가 없고 본 사람들이 단지 순위나 등급을 정할 뿐이라는 점에서 그는 아름다움의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절대적 아름다움만을 인정할 뿐. 그 아름다움은 사랑 공부로 완성되는 절대적 열망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열병을 앓고 나서 숙연해지는 어떤 경지인 ‘앓음-다움’이거나, 끝없는 탐구심으로 알아가는 마음을 채워가는 ‘알음-다움’이 아니었을까? 그의 생각을 이렇게 해석해보면 안 될까?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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