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사랑을 담아 이야기하기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천호균이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사랑을 담아 이야기하기’이다. 요즘에 자주 쓰이는 투로 말하자면, 광고 창작자들이 어떤 브랜드에 대한 사랑을 전달하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녕 내보이고 싶었던 속내는 사랑 공부로 창의성을 키운 광고 창작자들이 어떤 브랜드를 넘치게 사랑하여 소비자들에게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시대의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을 터.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의 말 걸기를 시도하며 살아간다. 천호균은 줄곧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을 줄기차게 강조했는데, 사랑이란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이야기하기의 핵심 주제나 마찬가지다.

>>연세에 비해 퍽 젊게 사시는데, 다르게 살기 위해 많이 노력하셨을 것 같아요. 감각과 열정을 어떻게 유지해 오셨는지요?
저는 세상일에 별로 자신이 없어요. 다만 짧은 시간에 사랑하기에는 자신 있으니까 만약 그런 시합이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어요. 사랑이란 자기를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이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를 알 수 있겠어요? 제가 여태까지 사업을 해왔는데 제가 상대를 배려하는 그런 구석이 있어서 그들 역시 쌈지를 사랑한다고 봐요. 저는 짧은 시간 안에 강아지 사랑하기 같은 그런 시합에 자신이 있으니까 CEO들끼리 사랑하기 대회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사람들 대부분이 늘 남을 비판하려고 하는데, 늘 아쉬운 것이 순수한 사랑이에요.

>>창의적인 광고도 열정적으로 사랑하기에서 나온다고 하셨는데, 광고 디자이너와 패션 디자이너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결국은 같은 이야기인데 똑같이 사랑하라는 거죠. 어떤 대상을 놓고 바람을 피워야 하는데, 바람피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사랑보다 차원이 높겠지만 자기를 위해 바람을 피우느냐 상대방을 위해 피우느냐에 따라 굉장한 차이가 있어요. 제 말은 이성간의 사랑을 뜻하지는 않고 농부하고 바람을 피운다거나 우리 전통문화와 바람을 피운다거나 그런 맥락입니다. 열심히 사랑하고 바람을 피워보면 차원이 달라집니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멋있고 화려한 것을 주로 추구하는데 그런 쪽도 물론 조금은 있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쪽도 중요하다고 인정하고 열렬히 사랑해야죠.

>>쌈지에서 시작해서 계속 하위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앞으로 쌈지의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지키고 키워갈 계획이신지요?
그동안 예술하고 친구할 것을 찾다보니까 농부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창조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는 농부의 모습과 가장 비슷해요.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농촌 사랑으로 문화의 개념이 바뀔 텐데 유럽에서는 벌써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어요. 농부가 사랑할 기회를 저희에게 주었으니까 저희도 마케팅 아이템을 농부 사랑 쪽으로 잡아 쌈지 농부라는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었어요. 잡곡들은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데 특히 콩은 기본적으로 땅을 보호하니까 주 품목으로 할 생각이에요. 콩 심을 때 한 번에 세 개 심는다는 말이 있어요. 하나는 땅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는 새가 와서 먹으라고, 마지막 하나는 자기 먹으려고 심는다고 하죠. 배려의 뜻이 담겨있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지금 아무리 유기농 식품을 강조해도 땅에는 도움이 안 돼요. 옛날에는 땅까지 생각하는 지혜로운 농사를 지었다는 점을 앞으로 깊이 생각하려고 해요.

>>패션의 콘셉트도 계속 그런 방향으로 끌고 가실 생각이신지요? 쌈지의 이미지가 더 후퇴할 것 같고 요즘의 트렌드를 거스를 것 같은데요.
그동안의 쌈지 이미지가 예술적이었고 키치적이었다면 지금 외형적인 모습은 귀농인 중심으로 바뀌고 있어요.

광고 크리에이티브도 광고인의 사랑이 얼마나 열정적이냐에 따라 달라져요.
열정적으로 하다보면 뭔가 독창적인 것이 나와요.
그래서 광고 창의성이란 브랜드에 대한 사랑을 담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후퇴라고 볼 수도 있고 트렌드와 거꾸로 간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극과 극이 통할 수도 있어요. 멋쟁이들 관점에서는 극과 극이 결국 같아요. 저희가 쌈지 농부를 만들면서 가장 주목한 곳은 온라인 미국 시장입니다. 농부 같은 분위기로 쌈지 농부 쇼핑몰을 구성한 뒤에 거기에서 가방도 팔고 옷도 팔고 작가들 작품도 찍어서 올릴 생각입니다. 이때 하고 싶은 말은 ‘농부를 사랑하자’이고 농부 같은 분위기로 우리 패션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려고 합니다.

그는 이런 작업의 일환으로 농촌과 농사 그리고 농부에 주목하며 ‘농사는 예술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쌈지 농부라는 새로운 아트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최근 열린 서울 디자인 올림픽 2008에서도 자연과 농사에 담긴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각국의 참관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는 이 행사에서도 쌈지 농부 초대작가를 선정하여 예술과 농사를 연결시켰으며, 농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했다. 또한 ‘젊은이의 귀농’이라는 주제로 캠페인을 전개하거나 ‘쌈지 농부신문’을 발행한 것도 다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하겠다.

>>국내의 많은 브랜드가 동시대의 트렌드를 담지 못해 안달하는 상태에 있는데, 쌈지는 흐름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약간씩 바꿔주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라고 보는데요.
안 바뀌면서 바뀌는 것이 진정한 변화이지 계속 바뀌면 변화가 아니죠. 그러니까 디자인에서는 안 바뀌면서 바뀌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명품이 만들어지고 하니까 얼마나 깊이 있게 길게 가느냐가 중요해요. 변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죠. 저도 한 20년 정도 비즈니스를 했는데 소비자의 변화에 맞춰 너무 빨리빨리 변하다보니까 없어지는 브랜드들도 있잖아요. 그 당시는 성공할지 몰라도 끝까지 가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생기니까 이런 것이 제일 고민스럽고, 변화의 시점을 어떻게 찾느냐가 경영에서 제일 큰 숙제죠. 트렌드가 변화무쌍하고 소비자의 변덕이 아무리 심해도 저는 끝까지 예술 이야기를 하겠어요. 앞으로 예술가들이 보는 농촌의 모습을 이야기 하겠어요. 그 약속을 저라도 지켜나가고 싶어요. 예술가들이 보는 농촌의 모습을 통해 예술과 사랑의 풍경을 바꿔보고 싶어요.

>>앞으로도 브랜드 마케팅에서 예술을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날 것 같습니다. 쌈지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앞으로 쌈지 브랜드를 국제화시킬 계획이 있으신지요?
결국 창의성의 경쟁력 문제로 귀결됩니다. 제품만 가지고 외국과 경쟁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앞서기 위해서는 어떤 창의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지는데, 만약 농부나 농사라는 주제가 전 세계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한국의 농촌 모습과 언어를 가지고 그들과 소통해보고 싶어요. 창의적인 이야기 개발이 관건이겠죠. 쌈지에서 갑자기 농부나 농촌 문화를 제품에 담으면 다들 의심하겠지만, 의심한다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니까 나중에 능력이 인정되면 브랜드가 커가는 토양이 되겠지요. 저희는 국제 경쟁력의 핵심적인 요소를 농촌과 농부에 담았어요. 지금 공업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모두 문화 이야기예요. 문화 예술에서 핵심으로 보는 것이 자연과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저는 자연과 생명에서 가장 으뜸은 농사라고 봐요.

농사를 모티브로 구성된
서울 디자인 올림픽 2008 쌈지 공간.
>>쌈지는 원색을 많이 쓰고, 꾸미지 않고 독특하고 솔직담백하게 광고를 해 왔어요. 경우에 따라 카피 없이 제품만 부각시켜 강인한 느낌을 전달해왔다고 보는데, 판매 메시지라기보다 예술적 표현에 가까운 듯합니다.
저희가 아트 프로젝트로 나가다 보니까 프로젝트가 광고에도 활용된 거죠. 예를 들어, 쌈지길은 건축가가 해석한 문화를 공간으로 표현한 거예요. 그동안 아트 프로젝트로 문화가 계속 축적됐기 때문에 그 축척된 것을 바탕으로 또 하나의 문화를 형성해 나갈 수 있었어요. 제가 교묘하게 예술로 포장해온 것이 아니라 아트의 연속선상에서 원색적이라든가 키치적이라든가 서민적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추구해온 것이지요. 한 마디로 쌈지 속에 담긴 문화적 코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사동에 ‘쌈지길’도 만들었고 딸기 브랜드도 새로 태어났어요. 사람들이 쌈지길을 어떻게 지었느냐 또는 어떻게 그런 식으로 광고를 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하시는데, 그동안 쌈지만의 독특한 문화가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문화적 토양을 그대로 풀어냈을 뿐입니다.

>>쌈지의 광고 스타일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줍니다. 그렇지만 인쇄광고를 위주로 해서 쌈지의 브랜드 개성을 표현했다고 하는 평가가 옳겠지요. 한편으로 차별화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인쇄광고 위주로 광고를 하실 생각이신지요?
잡지광고가 굉장히 원색적이고 강렬해서 어떻게 보면 학생작품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하지만 광고란 브랜드 랭귀지(brand language)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을 자꾸 없애거나 바꾸면 안 되겠죠? 업그레이드되더라도 해오던 말은 계속해야 되니까요. 전에 쌈지도 텔레비전 광고를 한 적이 있어요. 쌈지의 영상광고를 처음 했을 때를 생각하면 울컥하는데 그때 쓴 노래가 ‘뜸북새’에요. 약간 북한풍이 느껴지는 그런 이미지가 도처에서 계속 이어져온 거죠. 얼마 전에 모처럼 우연히 들었는데 지금도 그 촌스러움을 똑같이 느껴요. 음상이 안 좋은 채로 나오고 약간 고장난 듯한 1970~1980년대 음악이었죠. 그런데 이런 느낌이 아직도 추구하고 있는 쌈지의 언어란 말이죠.

그는 예술이 현대인의 일상을 구원한다고 보는 듯하다. 여러 기업들에서 예술과 마케팅을 접목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일찍이 이 분야에 선구적인 족적을 남긴 그는 앞으로 농부의 이미지로 쌈지의 내일을 말하고 싶어 한다. 광고란 브랜드의 언어라고 생각하는 그는 남을 따라가는 언어가 아닌 자신이 창조하는 언어로 세상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일찍이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는데, 브랜드의 언어가 곧 광고라는 그의 생각을 하이데거처럼 말하자면 광고는 브랜드가 존재하는 집이다. 이제 그는 예술과 사랑이 가득한 브랜드의 풍경화를 그려보고 싶은 것이 아닐는지.

>>패션도 그렇고 광고도 그렇고 창의성이 중요하잖아요? 광고에 있어서 창의성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의 절정이나 뭉침이 광고로 표현되면 광고 크리에이티브가 되고 제품으로 나타나면 디자인 크리에이티브가 되겠죠. 평상시에 축적된 감각이나 실력이 어느 대상을 향해서 나타나느냐가 중요합니다. 반대로 그 대상이 갑자기 제 앞으로 다가오기도 하겠고요. 연기자가 연기를 할 때 연습을 많이 하면 연기가 잘 되고 훈련이 부족하면 연기력이 안 나오듯이, 사랑에 훈련된 사람들은 그만큼 사랑의 감정 연기도 잘 하겠죠.

그렇지만 사랑의 훈련이 억지로 되지는 않아요. 굉장한 습관이 있어야 하니까요. 광고 크리에이티브도 광고인의 사랑이 얼마나 열정적이냐에 따라 달라져요. 열정적으로 하다보면 뭔가 독창적인 것이 나와요. 그래서 광고 창의성이란 브랜드에 대한 사랑을 담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무조건 떠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담아 이야기하는 것이죠.

>>쌈지 광고를 아무리 아티스트들에게 맡긴다 하더라도 사장님께서는 최종 결정을 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작품 이미지들이 모여 쌈지라는 큰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결국 사장님께서 승인하셨을 테니까요.
제가 승인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쌈지에는 그동안 이어져온 문화 자산이 있기 때문에 작가가 그 자산과 계약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옛날에 제가 한참 건방질 때는 “돈 하나도 안 들이고 돈 많이 써라.” 이런 말을 자주 했어요. 돈 많이 들이고 안들인 것처럼 하라는 지시도 자주 했죠. 외형적으로 소박하게 보이자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작가들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어요.

>>요즘에도 직접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시는지요?
옛날에도 제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할 수 없어요. 최근의 쌈지 농부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의 영결식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쌈지 농부를 가지고 디자인올림픽에 나갔는데, 그때 영결식에서 느낀 영감이 아직도 생생해요. 박경리 선생님이 농사짓는 광경이나 고양이에게 밥 주는 광경을 생각해보세요. 작가들에게 밥해주는 아름다운 마음은 농부들의 아름다운 모습하고 똑같아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가 쌈지 농부라는 브랜드 속에 이야기하고자 했어요.

>>패션과 음식 문화를 결합한다 하더라도 쌈지 농부라는 이름은 너무 시대감각에 뒤떨어지지 않을까요?
이름보다 그 이후에 광고 마케팅이나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이름이 잘못됐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손녀 이름 지을 때 한명은 기억니은 할 때 니은으로 지었고 한명은 긍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래그래 할 때의 ‘그래’로 지어주기도 했으니까요.

천호균은 우리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그동안 무진 애를 써왔다. 그는 사람들이 우리 것에 숨어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놓치거나 애써 외면하고 헛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우리시대의 가장 치명적인 문화적 문맹으로 보았다. 그가 보기에 패션에도 신토불이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애써 거부하기보다 사랑을 담아 이야기하면 틈새시장이 생길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모두가 서구적인 패션 문화를 탐하더라도 자신만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우리의 문화적 토양을 있는 그대로 해석해보고 싶어 했다.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사랑을 담아 이야기하기’이다. 요즘에 자주 쓰이는 투로 말하자면, 광고 창작자들이 어떤 브랜드에 대한 사랑을 전달하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녕 내보이고 싶었던 속내는 사랑 공부로 창의성을 키운 광고 창작자들이 어떤 브랜드를 넘치게 사랑하여 소비자들에게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시대의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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