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말랑말랑한 이야기 -김원규(2)-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우리 모두는 이야기를 좋아하며,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 때가 많다. 그는 어떤 브랜드를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광고 창의성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가히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할 만큼 이야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우리 시대에,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생각의 뷰’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김원규의 내일을 지켜보기 위해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을 바쳐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광고 창작자치고 일에 미쳐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적어도 광고를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라고 생각하는 일급 크리에이터라면 말이다. 1세대 카피라이터 김태형 선생은 늙어서까지 정열적으로 활동한 괴테와 피카소의 일생을 유한양행 게론톤 광고에 차용하며 벌써 오래 전에 “老? No!”라는 기념비적인 헤드라인을 썼다. 김원규 역시 그런 길을 가고 싶다고 고백했는데 그런 기대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터이다.

>>우리나라 광고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광고인이 될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려면 감수성을 유지하고 발휘하는 문제가 중요할 겁니다.
날을 세운 사람들에게 배우고 자료를 보면서 계속 공부할 수밖에 없어요. 2005년 칸느 광고제 심사위원장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했어요. 예전의 소비자들은 광고를 보면서 뒷이야기가 뭘까 궁금해 했는데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은 시대에 사니까 보는 순간 바로 느낌이 오도록 날을 세워야 한다고 말이죠. 전적으로 동의해요. 제가 잡지를 보면서 스크랩을 하니까 어떤 후배가 이래요. “선배님. 저걸 언제 써먹으려고 또 스크랩이에요? 곧 선배님 세대는 종 칠 텐데 책 살 돈으로 술이나 사줘요.” 그래서 제가 “내가 실력은 알량하지만 길게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런다.” 이랬죠.

>>오래도록 일하시려면 먼저 회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실 계획입니까?
정말 크리에이티브가 강한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큰 계획은 없지만, 오브코스에 맡기면 희한하고 남들이 생각지 못한 광고를 잘 만들더라, 이런 평판만은 얻고 싶어요. 고민도 있죠. 프레젠테이션 승률이 높은데도 광고주가 크게 늘지 않는 것은 제가 영업을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사람 만나서 영업하고 이런 것을 정말 못 하는데, 계속 노력하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광고를 담당하셨을 텐데, 대표작이나 정말로 애착이 가는 광고를 한두 가지만 골라 주세요.
제가 LG그룹 광고를 오래했어요. 2004년에 ‘생각의 힘을 믿습니다’ 캠페인을 하다가 LG애드에서 나왔는데 ‘생각의 힘을 믿습니다’ 캠페인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나라는 자원부족 국가이지만 생각에 따라 대한민국이 빅 브랜드가 될 수 있고 우리의 기업 브랜드도 파워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말이죠. 그때 참 보람을 느꼈어요. 또 하나는 1997년 무렵 라끄베르 화장품 캠페인을 맡았을 때였는데, 그때 광고주의 요구사항이 처음 시장에 진입하는데 예산이 없으니 빅 모델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빅 모델에게 보통 2억 원 정도의 모델료를 줄 때 김남주 씨에게 3천만 원 정도 줬어요. 그러면서 광고 모델의 비중은 줄이고 클리닉 자체를 부각해 피부 컨설턴트라는 개념을 제시했어요. 사실 다른 화장품도 화장품 입자가 다 빨렸는데 마치 라끄베르만 그렇다는 듯이 주사기 바늘로 빨아 분사시키며 입자가 곱다는 점을 강조했고, “라끄베르와 상의하세요”라는 카피를 붙였어요. 반응이 좋았어요.

그는 지금도 생각의 힘을 믿는다. 앞으로도 생각의 힘을 굳게 믿으며 광고 창작을 하려고 한다. 이 말은 광고 카피에 사용되었지만 거의 진리에 가깝다.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고 결과를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인생도 환경도 그리고 브랜드의 운명도 바꿀 수 있다고 보았는데,
순기능을 유지하는 가운데 좀 튀는 광고를 만들고 싶어요. 컬러로 말하자면 빨간색이겠죠? 독이 들어있는 광고요. 독이라는 건, 소비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메시지를 말해요.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광고죠. 그런 광고들이 결국은 파워브랜드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생각의 힘이 얼마나 파괴력을 갖는지는 그것이 불러오는 반발이나 반응의 정도로 측정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후배들의 아이디어를 리뷰할 때나 좋은 광고물을 고를 때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시는지요?
우리 직원들은 제가 리뷰할 때 뻔한 어프로치는 아예 가지고 오지를 못해요. 오브코스에서는 나올 수 없는 아이디어라며 제가 면박을 줘요. 훈련을 그렇게 시키니까 자꾸 남들이 안하던 것이나 다른 발상을 가져올 수밖에요. 제가 최근에 콘돔 광고를 봤어요. 1천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만나려 뛰어오면서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요. 결국 만나 껴안으니까 0mm 자막이 뜨고, 안고 있다 느슨해지면 0.1로 바뀌며 숫자가 왔다 갔다 해요. 콘돔의 두께가 0.02mm라는 점을 남녀간 사랑의 거리로 풀어낸 것이죠. 콘돔 광고에서 남녀가 벗는 장면 없이 0.02mm라는 숫자만으로 통찰력있게 표현했어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감동을 받았어요.

>>현재 우리나라 광고 표현에서 아쉬운 대목은 어떤 점인지요?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상에 도움될 만한 말씀도 좋고요.
과장광고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아쉽죠. 과장광고는 거짓광고가 아니잖아요. 창의적인 과장광고, 네거티브 어프로치, 그냥 보여주는 섹스어필 말고 뒤집어 생각해보면 성적인 코드가 들어있는 세련된 섹스어필 광고 같은, 기존에 시도되지 않은 접근방법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아이디어는 잡학에서 나옵니다. 많이 아는 수밖에 없어요. 인터넷은 정보의 창고니까 잘만 활용하면 대어를 낚을 수 있어요. 광고 창작에는 소비자의 몫도 있고 광고주의 몫도 있지만, 어쨌든 아이디어를 여기저기서 주워와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방법을 써봐야죠.

>>그렇다면 광고 창작자들이 더 노력해야 할 대목은 무엇일까요?
광고업계 인재들의 열정이 자꾸 식어가는 것 같고 좋은 인재들도 안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저는 후배들에게 인간학이나 심리학 공부를 하라고 무척 강조하거든요. 명분 다르고 실제 다르고 제품마다 브랜드마다 사는 이유나 구매행태가 다 다르니까, 결국 인간학을 연구할 수밖에 없어요. 광고 창작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광고에 대한 열정에 따라 크리에이티브가 좌우된다고 봐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열정을 가졌느냐로 결과가 바뀌죠.

>>그동안 작업한 광고를 보면 카피가 그냥 카피로 끝나지 않고 절묘하게 아트화 되어있습니다. ‘보그’, ‘엘르’, ‘지큐’, ‘에스콰이어’ 같은 유명한 외국 잡지를 오랫동안 보셔서 자연스레 아트 감각의 구현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그 영향도 무시는 못하겠죠. 잠재의식의 문제인데 제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디렉션(direction)을 하는 것 같아요. 광고는 제한적 예술이고 상업적 메시지이지만 예술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봐요. 광고 전략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크리에이터들은 작가주의적 관점이 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물론 전략과 콘셉트에 맞는 광고여야 되겠지만, 어차피 소비자를 설득해서 감동을 주려면 작가주의적 예술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크리에이터들이 작가주의적인 심미안을 가지고 의도적인 디렉션을 할 필요가 있어요.



>>작가주의라는 말씀, 정말로 반갑습니다. 제가 누구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자기만의 색깔이 없는 광고 창작자들이 많다고 봐요. 그동안 어떤 관점에서 광고를 만드셨는지요?
딱 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는데, 광고가 삶에 공기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광고를 만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저는 쿡(QOOK) 같은 광고를 보면 의도는 알겠지만 기분이 굉장히 안 좋더라고요. 다들 제품과의 상관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간과해버리고 내보내는 광고도 많은 것 같아요. 무조건 눈에 띄게 하거나 임팩트를 주는데 그치기보다 광고의 순기능을 생각해야 합니다.

>>작가주의 맥락에서 앞으로 어떤 스타일의 광고에 몰두하실 생각인지요?
저는 광고의 순기능을 유지하는 가운데 좀 튀는 광고를 만들고 싶어요. 컬러로 말하자면 빨간색이겠죠? 뭔가 독소가 있는 것, 독이 들어있는 광고요. 독이라고 해서 쥐약 개념이 아니에요. 밍밍하지 않고 소비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메시지가 담긴 거죠.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 광고 말입니다. 그런 광고들이 더 평가를 받고 결국은 파워브랜드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광고란 그 속성상 과장된 대목이 있기 마련인데 사실 우리 광고에는 절묘하게 과장하는 표현이 많이 부족하다. 과장광고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이 다소 엉뚱했지만, 허위광고가 아닌 상품의 진실을 바탕으로 과장을 극대화시켜 표현의 극한치에 도달해야 한다는 지점에 생각이 머무르면 그의 주장에 한 표를 던질 수 있으리라. 이는 어쩌면 광고 창작자의 개성이나 자질에 관련되는 문제라, 광고 창작자들에게 좌절감만 안겨줄 수 있을 법하다.
한편으로 그는 우리 광고에 작가주의가 부족함을 많이 안타까워했다. 작가주의란 광고 창작자의 컬러를 나타내는 말이자 자기 목소리 혹은 개성의 다른 표현일 터. 미디어 빅뱅이 이루어지고 소비자의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우리 시대에는 제품의 특성이나 소비자 혜택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광고 창작자들이 사람 연구를 더 많이 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광고 창작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일 것이다. 작가주의의 부재는 결국 똑같은 획일화에 이르러 광고 표현의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기 때문에 작가주의의 회복은 정말로 시급한 당면과제라고 하겠다.

>>평소 어떤 경로를 통해 생활자로서의 소비자 체험을 하시는지요?
저는 양말부터 속옷까지 저에게 관련된 것은 집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제가 다 사요. 광고인으로서의 사명감에 대해 티를 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직접 사봐야만 뭔가 소비자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고 백화점에서 세일즈 토크로 파는 방법도 알 수 있으니까요. 크게 따지지 않고 일단 내지르는 그 지름신 때문에 마누라한테 욕도 많이 먹고 그랬는데 직접 쇼핑하면 늘 만족스러웠어요. 자기가 광고하는 브랜드에 대한 확신이나 충성도가 없으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광고에서 욕을 못하게 합니다. 자꾸 욕하다보면 브랜드도 싫어지니까요. 욕하지 않고 좋아하려고 노력하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잖아요.

>>사람마다 다르고 광고 창작자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무엇이 광고 창의성이라고 보시는지요?
저는 말랑말랑함에 있다고 봐요. 우리가 흔히 유연성이라고 말하는데,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뜻하죠. 잘 아시겠지만 브라질 출신의 크리에이터들이 미국 메이저 광고회사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많이 스카우트되어 가잖아요. 실제로 브라질 광고가 광고제에서 상도 많이 받고요. 저는 그 이유를 브라질 사람들의 생활이나 생각에 유연성이 많다는 데서 찾아요. 축구를 하더라도 우리는 죽기 살기로 하지만 그들은 그냥 게임 자체를 즐기잖아요. 그러한 유연성이 크리에이티브와 맥을 같이 한다고 봐요. 모든 것을 좀 더 유연한 생각으로 본다면 안목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다르게 표현할 수 있어요.

>>말랑말랑함이라는 개념이 감성적인 표현을 뜻하는 건가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언젠가 제가 ‘우유 좋아 우유 좋아’라는 우유 캠페인을 했어요. 사람들이 우유가 몸에 안 좋아서 안 먹지는 않잖아요. 좋다는 점은 다 아는데 먹기 싫은 거죠. 청소년들은 우유에 대해 일단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내요. 콜라가 자유라면 우유는 엄마가 몸에 좋다고 먹으라고 억지로 권유하는 도덕이라는 점이죠. 또 하나는 고등학생이 우유마신다고 하면 자신이 아직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어요. 그래서 도덕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노래로 재미있게 하려고 우유 송을 만들었죠. 처음에는 싫어하던 학생들도 인터넷에 뜨고 다른 애들도 따라 부르고 하니까 굉장히 좋아했어요.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도록 다른 관점으로 다가가는 것이 말랑말랑함의 힘이라고 할 수 있어요.

>>광고의 순기능은 결국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단순히 주목만을 끄는 광고보다 사회 속에 공기처럼 순기능을 하는 광고가 더 길고 오래 갑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결국 순기능적인 광고의 방향성이 아닐까 싶네요. 크리에이터한테 참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새로움(new)’이라는 개념인데 영화도 좋고 문화도 좋고 늘 처음 나오는 것과 친숙하게 지내되 언제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귀결되면 광고의 순기능이 커진다고 봐요.

어떤 브랜드가 파워브랜드로 거듭나는데 광고가 조금은 영향을 미친다. 가끔은 그 이상일 때도 있다.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광고가 제품을 살려주지 않는다면 파워브랜드 반열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생각으로 ‘카피 카피라이팅 카피라이터(나남출판, 1993)’에 이어 ‘파워브랜드를 만드는 광고전략(나남출판, 2006)’이라는 책을 통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계적인 파워브랜드를 만든 광고를 재해석하기도 했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광고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 개념은 ‘말랑말랑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좋아하며,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 때가 많다. 이야기라는 단어가 ‘귀로 먹는 약’이라는 뜻의 이어약(耳於藥)에서 유래했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브랜드를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광고 창의성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시대라고 할 만큼 이야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 시대에,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생각의 뷰’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그의 내일을 지켜보기 위해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을 바쳐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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