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렌딩된 브랜드를 마신다
-일본 차 음료 CM 안의 브랜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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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일본의 어느 지인이 한국에 처음 갔을 때, 차음료를 마시고 싶었으나 찾을 수 없어서 당황했었다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지금은 한국도 2000년대 초반 웰빙열풍과 함께 차음료 시장이 크게 성장한 상황이지만, 차음료 제품이 다양하고 일반화되어있는 일본인에게는 당시의 경험이 무척 생소한 일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차 음료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차 음료 제품이 대부분 혼합차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면 일본은 우롱차, 녹차, 혼합차 등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양상을 띄고 있다. 그 제품군의 중심에 서 있는 제품으로 산토리의 ‘우롱차’, 산토리의 ‘이에몬’, 기린의 ‘생차(나마차)’, 코카콜라의 ‘소켄비차’정도로 손꼽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너무 많은 차 음료 제품들이 있기 때문에 그 중 이야기가 있는 CM을 ON AIR하고 있는 이 4개의 차 음료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최근에 온에어된 산토리의 ‘우롱차’ CM이다. 모델은 다소 우리에게 낯익지 않을 수 있는 와호장룡의 ‘장첸’과 8인 최후의 결사단에 출연한 ‘판빙빙’이다. 물론 ‘장첸’이나 ‘판빙빙’의 경우, 젊은 중국 배우로써 최고의 자리에 올라와 있는 톱스타들이지만, 일본이나 한국에서 다소 한 눈에 알아보기 힘든 모델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 그런 낯선 스타들을 클로즈업으로 화면에 가득 내세워 음식을 먹는 장면만 보여주는 이 CM은 기존의 차 음료 CM의 크리에이티브와는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CM은 우롱차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를 잘 표현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CM내내 소비자들에게 기름기 많은 중국의 음식을 경험시키고 그것을 중화시키는 ‘우롱차’에 대한 욕구를 강화시킨다. 우롱차의 폴리페놀은 담즙과 기름이 섞이는 것을 방해하고, 기름이 체내에 흡수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혈액 속 중성지방치를 낮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우롱차의 기능적인 측면을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거기에 더하여 ‘행복을 비웃지마라’라는 공격적인 캐치프레이즈로 산토리 우롱차의 도전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실 산토리 ‘우롱차’의 이러한 CM전략은 매우 일관적이고 같은 색채를 띄고 있다. 일단 ‘우롱차’라는 고유명사를 제품명으로 사용함으로써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 10여년이 넘도록 ‘우롱차=중국, 우롱차=산토리’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CM를 온에어하고 있다. 산토리 우롱차의 CM은 중국의 색채와 분위기를 영상 안에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왔다.
물론 산토리 우롱차는 중국에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 내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장첸과 판빙빙을 모델로 내세운 것도 어쩌면 중국 내에서의 방영을 염두해 둔 것일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산토리 우롱차 CM은 정통성을 중요시하는 일본인들(파스타 CM에는 이탈리아인, 김치 CM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을 등장시키기도 한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장기적인 전략일 것이다. 물론 단순히 같은 톤으로 계속 현상을 유지하는 캠페인이 아닌 변하지 않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강화시키는데에 그 중점을 두고 전개되어 왔음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장기적이고 일관된 브랜드 관리가 두드러지는 산토리의 또 다른 제품이 있다. 바로 산토리의 녹차 음료, ‘이에몬’이 그것이다.
2004년 발매된 이 제품은 런칭CM부터 일본적인 느낌을 가진 두 배우 모토키 마사히로와 미야자와 리에를 모델로 내세우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음악감독으로 유명한 히사이시 조의 우아한 BGM을 삽입하여 지금까지 30여편이 넘는 캠페인 CM을 진행해오고 있다. 7년에 접어드는 이 캠페인CM은 일본 쿄토의 전통적인 미, 그것이 가진 정통성, 옛 일본 부부의 정을 모티브로 일본 색이 짙은 간결하면서도 정갈한 영상을 화면에 그려내고 있다. 또한 대나무 형상의 독특한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은 일본의 전통적인 미학이 담아 CM과 연관성을 보여준다.
사실 7년을 똑같은 모델, 똑같은 테마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차 음료제품이 가지는 이미지와 관련이 깊다. 일본에서 차 음료 제품은 전자제품이나 일반 청량음료와는 달리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소비자층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유행에 민감한 제품이 아니다. 위에서 살펴본 우롱차CM과 마찬가지로 브랜드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로열티를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산토리는 강한 ‘우롱차’와 소박한 ‘이에몬’이라는 다소 상반된 브랜드를 구축함으로써 차 음료 시장의 점유율을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
산토리의 이러한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은 일본의 가게 앞에 매달린 커튼 형식의 천, 노렌(のれん)과 그 느낌이 유사하다. 풍광이나 추위막이의 기능적인 역할을 했던 노렌은 가게의 입구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가게의 전통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노렌은 가게의 얼굴인 것이다.
산토리 이에몬의 CM에서도 이러한 노렌의 비주얼을 이용한 광고가 유난히 많은 것은 정통성, 자신감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에게 이러한 상징성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국시대의 다케다 신겐의 ‘풍림화산(風林火山),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포무(天下布武)’와 같은 깃발이나 그들이 입었던 색이 화려하고 매우 장식적인 갑옷들은 적에게 자신을 알리는 상징이기도 했지만, 병사들을 모집하기 위한 홍보브랜드로써의 상징성이기도 하였다. 일본인들에게 노렌이나 쇼군의 깃발에 그려진 무늬나 문구들은 가장 전통적인 광고의 형태였던 것이다.
물론 산토리와는 다른 광고전략을 구사하는 차 음료제품도 많다. 기린의 생차(나마차)도 그 중 하나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구사하는 차 음료의 광고도 이러한 형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크리에이티브는 전형적으로 여성을 타겟으로 삼는 CM이다. 사실 소비자를 타겟화하는 것은 오히려 큰 리스크를 안고 있기 마련이다. 소외된 타겟들의 상품 접근성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품에 대한 로열티 강화에도 그리 좋지 못한 영향을 주는 것도 분명하다. 기린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타겟으로 설정한 20~30대 소비자들에게 좀 더 강력한 전략을 구사한다. 바로 귀여운 캐릭터를 브랜드 강화의 전략적 무기로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생차(나마차)팬더는 20대~30대의 여성 타겟들에게 제품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고 로열티를 강화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실제로 인형이나 관련 제품들이 출시되었고, 단기적인 효과를 얻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과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얼마나 이러한 단발적인 캠페인들이 효과를 거둬들일지는 미지수이다.
심지어 최근에 ‘야마시타 토모히사’라는 아이돌배우를 전면에 내세워 두가지 종류의 생차를 선전한 CM은 기존의 CM의 이미지와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어떠한 전략으로 접근했는지, 아니 근본적으로 어디에서부터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와 접점과 continuity를 찾아야 할지조차 다소 의문이 든다.
오히려 최근에 온에어된 코카콜라의 소켄비차 CM은 타 브랜드와의 차별화 전략을 선택함과 동시에 ‘에코’라는 최근의 트렌드에 발맞춘 느낌을 준다.
미야자키 아오이라는 밝고 산뜻한 이미지의 모델과 함께 식물성 소재로 만든 펫트병을 선전하고 있는 이번 캠페인은 차 음료가 가진 이미지와 부합하여 단순히 마시는데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다른 감각과 구매욕을 자극시켜주고 있다.
코카콜라가 최근에 런칭한 ‘이로하스(I LOHAS)’라는 제품도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라는 제품명에서 보여주듯이 식물성 펫트병을 전면에 내세워 환경문제는 물론, 펫트병을 비틀어 버리는 재미까지 효과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경쟁사와는 다른 포인트를 공략한 차별화 전략이 잘 들어맞은 결과인 것이다.
이제 브랜드의 좋은 품질이나 멋진 스타일은 강점이 아닌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사양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 만족스러운 경험을 소비자들에게 주느냐가 브랜드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일본의 브랜드 중에 MUJI(무인양품)는 브랜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무(無)’를 내세운 이 일본의 발칙한 브랜드는 사실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상품에 붙이기 위해 만들어진 브랜드를 없앰으로써 그 자체를 브랜드화했기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없음의 브랜드, 덜어냄의 브랜드’이미지가 다른 브랜드들과 차별화되고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었던 것이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난다. ‘고객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한다.’
지겨운 영화는 8000원이라는 비용을 내던지고 영화관을 뛰쳐나올만큼 무섭고, 재미와 만족이 없는 상품은 영원히 그것을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것이다. 산토리처럼 기존의 것을 멋스럽게 지켜나갈 것이냐, 코카콜라처럼 경쟁사와 다른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냐…중요한 것은 소비자를 10년 된 연인처럼 다루는 순간, 소비자는 편지 한 통조차 남기지않고 떠나가버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 물론 불만의 편지들이 쇄도할 수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