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양강장제를 떠올리면 열에 아홉은 박카스라고 외칠 것이다.
비록 요즘 '간때문이야'를 외치며 우루사가 무섭게 올라오고 있지만 아직 박카스의 아성에는 못미친다. 한 때 박카스를 위협했던 비타 500은 연예인만 내세우며 광고를 하다가 이제는 소비자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다. 무엇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박카스를 만들었는가.
약국에서 슈퍼로
얼마 전까지 박카스는 약국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다.
박카스의 광고도 항상 피로에 지친 사람들이 약국에 들어가 박카스를 사 마시는 장면으로 끝나곤 했다.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약국에서 판다는 것으로 건강한 음료라는 것을 강조했던 셈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된 이 카피와 박카스의 호감을 주는 광고들은 대중의 머리에 박혀 어느새 피로회복제=박카스라는 공식이 완성되었다.
박카스 하면 당연히 약국에서만 살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들과 차별화가 되었던 것인데 슈퍼 판매가 허용되었다.
찬반 논란이 있었고 결국 박카스는 슈퍼 판매를 하기로 결정했다.
대중들이 보다 더 쉽게 살 수 있게 된 것인데 기업 입장에서도 지금까지의 마케팅을 뒤엎을 만한 가치가 있는 크나큰 유혹이었던 셈이다.
슈퍼 판매가 허용되면서, 더 이상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라는 말을 쓸 수 없게 된 박카스는 '박카스는 박카스입니다'라며 슈퍼에서 팔던 약국에서 팔던 박카스는 같다고 어필했다. 하지만 이 문구가 효과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광고였으며 다른 소비자들의 반응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세상사는 게 피로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던 중 나온 것이 이 카피다.
그리고 이 카피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모두의 공감대를 얻을만한 광고를 만듦으로써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지금 광고는 이 광고의 후속작인 셈인데, 자신의 처지가 힘들다고 생각하며 남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연결 고리가 결국 처음에 남을 부러워했던 사람에게로 돌아온다.
누군가가 보기엔 나도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도 나와 같이 삶의 피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로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말 뜻 그대로 ‘모두가 피로하다’라고 하면 광고를 보는 사람들도 더욱 피로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피로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는 카피는 이러한 느낌을 보는 사람이 덜 인식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뇌리에 콕 박히는 카피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광고와 잘 맞아떨어짐으로써 인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광고는 남자들만 등장하는 광고였다.
사실 내용에 초점을 맞추느라 남자들만 나왔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광고를 보니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번 광고는 여자들만 등장한다.
처음에는 아기 엄마가 유치원생 아이를 두고 있는 엄마를 보고 부럽다고 한다.
유치원생 엄마는 학생과 엄마를 보고 부러워한다.
학생 엄마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은 딸과 함께 있는 엄마를 보고 부러워한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의 아기 엄마와 마지막의 딸이 동일인물이다.
얼핏 보게 된다면 지나칠 수도 있다.
학생 엄마가 부러워하는 대상이 시집간 딸을 둔 엄마이기 때문에 지난 광고보다 연결성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광고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광고를 본 사람들이라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아기 엄마부터 할머니까지 나오면서, 은연중에 전 세대가 마시는 박카스라는 것을 전하고 있다.
또한 지난 남자들의 관계보다 단순한 모녀간의 관계를 예시로 삼음으로써 더욱 이해하기 쉽고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광고를 자세히 보다 보니 스쳐 지나가서 발견하지 못한 것이 눈에 띄었다.
배경으로 나오는 슈퍼와 약국이다.
‘부러운 슈퍼’, ‘건강한 약국’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앞에서 언급한 슈퍼와 약국에서 모두 구입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이다.